"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책 한 권을 만나는 일이 소중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중에서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책 한 권을 만나는 일이 소중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중에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아동 청소년책에 대한 달걀책방의 생각을 자유롭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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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그림책에 묶였던 그림이 떨어져 나왔을 때_'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전시 큐레이터 이지원 인터뷰

그림책에 묶였던 그림이 떨어져 나왔을 때

_각각의 그림이 벌이는 한 바탕 공연

취중진담 미니 인터뷰_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_큐레이터 굴뚝새의 이지원 선생님


이수지 작가의 개인전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을 감명 깊게 보고 와서 전시를 큐레이션 하신 굴뚝새의 이지원 선생님을 모시고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달걀책방 5월의 정원을 향해 책방의 창문을 열어두고 맛있는 와인과 음식과 함께 진행한 취중진담 미니인터뷰예요. 전시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해 보았습니다.


달: 이번 전시를 하기로 결정하신 시점은 언제인가요? 어떻게 이수지 작가(이하 이작가) 전시를 맡게 되신 거예요?
이: 23년 10월에 최종적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전 몇 달을 좀 고민한 기간이 있어요. 작가는 8월부터 제안하셨고, 그 전에 제가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이하 순천)과 이작가를 연결해 드렸고요. 순천은 10주년 기념 전시로 이작가의 전시를 원하고 있었어요. 

달: 이작가가 순천에서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어떻게 연결하신 거예요? 이작가라면 워낙 여러 곳에서 콜이 들어올 것 같은데요. 
이: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관장님께서 직접 서울로 오셔서 이작가를 만나 요청하셨어요. 관장님은 이런 작가의 전시를 지방의 어린이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장님은 자신이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며 이 일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죠. 이작가는 관장님의 그 말씀에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어요.

달: 이 전시는 그렇게 시작되었군요. 이번 전시 준비 어떠셨어요?
이: 이렇게 무리할 줄 알았지만 정말이지 무리해서 했어요. 특히나 이작가랑 한다면 무리하게 될 줄 알고 안 하려고 했는데… 

달: 어떤 면에서요?
이: 열심히 하는 작가고, 지금 최고의 위치에 있는 작가고요. 그리고 지금껏 제가 큐레이션 했던 세상을 떠난 유명 작가들의 전시나, 혹은 주제가 중심이 되어 여러 작가를 묶어 보여주는 주제전이나, 닿기 어려운 다른 나라에 있는 작가들 여럿을 모은 전시랑은 확연히 상황이 달랐어요. 사실 타지에 있는 작가들은 제가 한국에서 전시를 하면 고맙다는 말 외의 피드백을 주기 어렵거든요. 전시 준비 과정을 일일이 옆에서 챙기거나 참여할 수 없으니까요. 만약 이작가가 해외 작가였다면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와 함께 모든 걸 매번 같이 고민하고 의논하는 일들이 전시를 의미 있게 만들고 또 일은 엄청나게 많아지는 상황이 되었어요. 게다가 일을 해보니까 이작가랑 저랑 생각도 비슷하고 합이 너무 잘 맞아서 일이 더 많아졌어요. 

달: 손발이 너무 척척 맞는다?!
이: 기본적으로 그래요. 물론 다른 부분도 있어요. 굳이 제식대로 표현하자면 저는 어떤 면에서 고지식하고 정통적이고 또 담백한데, 이수지 작가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이고, 망치거나 잘못되더라도 파격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죠.

달: 큐레이터가 약간 똘끼를 발휘해 주길 바랐군요.
이: 맞아요. 그런데 저는 모험형이라기보다 정답형인 거죠. 오히려 전시 카탈로그의 글 같은 것을 작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작가가 그 글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놀랍고 감동했다고, 이번 전시는 이 글로 됐다고 했죠.


달: 카탈로그의 글 저도 잘 읽었습니다. 멋진 글이었어요. 전시장의 섹션 별로 설명된 글들은 최근의 이작가 에세이인 <만질 수 있는 생각>에서 가져온 것이더라고요. 직접 쓰셨으면 어땠을지 궁금했어요.
이: 전시장 벽면에까지 제가 작가를 군데군데 설명하는 것이 너무 작가를 어떤 방향으로 정의내려버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어요. 전시장의 각 섹션 아래에 걸리는 짧은 설명은 절대적으로 작가를 명명해버 리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과 자신을 잘 설명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번 에세이를 보고 거기서 뽑았죠. 작가는 제가 써주길 원했지만요. 대신 정말 열심히 에세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좀 글과 설명이 많은 전시 같지 않던가요? 어떻게 보셨어요?
달: 전시 공간이 커서 그 정도의 설명은 많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고…오히려 저는 공간을 볼드하게 쓰고 심플하면서 시원시원한 연출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림자놀이>에 해당하는 공간이 대표적인데, 그 책을 볼 때의 느낌을 공간으로 가져와서 연출했지 ‘원본이 그림책이니 그림책을 또 보여주겠다’고 매달리지 않았어요.
많은 그림책 전시가 그림책을 모태로 하기 때문에 그림책과 크게 달라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을 공간에서 재현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달까요. 그런데 이번 전시는 각 그림책의 에센스를 공간에서 또 다른게 느껴보는 다른 경험이었고 그건 관객에게 그림책을 억지로 지시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책은 어땠더라 하는 흥미나 호기심으로 이끌었죠. <물이 되는 꿈>, <토끼들의 밤>의 전시 공간이 그런 방식으로 좋았고요. <물이 되는 꿈>을 봤을 때의 느낌이 그 전시장에 있었고, <토끼들의 밤>도요. 사실 그거 되게 이상한 책이잖아요. 희한하게 멋진. 그 이상한 느낌이 그 공간에 잔뜩 찬 토끼를 보면서 바로 와닿아서 좋았어요.

달: 그런데 여기 들어가지 않은 책은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 이번 전시 컨셉이 ‘여름의 무대'이기 때문에 이 컨셉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걸러졌어요. 그렇게 걸러내도 그 큰 전시장에 걸 작업이 많았고요.  


달: 카탈로그 글에서 보면 이작가의 작품에서 어린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작가의 작품에 분명히 늘 어린이가 존재하는데, 제겐 특정한 캐릭터가 없는 일종의 무채색 계열의 어린이로 느껴져 왔어요.독자가  주인공 감정에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며 동화되기 보다 관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달까. 그래서 특정한 어린이의 느낌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결국 저는 이수지의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곤 하는데요.
이: 맞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부분이 있지요. 제가 말하는 어린이는 유니버설한 어린이, 개념으로서의 어린이에 가까워요. 어떤 특정한 아이로 콕 찍을 수 없죠. 그것보다는 모든 작품이 어린이성의 찬탄과 경탄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 작가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나는 전시였어요. 그림만 걸린 게 아니라서요.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전시 준비를 위해 중요한 시기에 빠질 수 없는 해외 출장 일정이 겹쳐있었어요. 스케줄상 만만치 않았는데, 이번 전시는 특히나 준비되어 있는 그림을 그냥 걸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져와서 설치하고 조립하고 벽에 그리고 거대한 시트지 그림을 붙이는 것들이 많았죠. 예상과 다른 시행착오가 생길만한 경우가 계속되는 작업들이요. 저도 열심히 했고 작가도 온몸을 던져서 했어요. 작가는 높은 사다리에도 올라가고 수액 맞으면서까지 설치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이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있었어요. 우선 이작가는 제가 함께 작업해본 작가 중에서 작가로서의 직업 윤리라고 할까요, 철저함이라고 할까요 이 부분이 가장 투철했어요. 전시 준비 중 마주쳤던 여러가지 예상 외의 어려운 상황에서 처음에 계획으로 세웠던 자신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점, 그를 위해 스스로 하려고 했던 것들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고 해냈습니다. 하기로 한 것은,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내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함께 하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부분은 카탈로그의 글에도 있지만, 작가의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이런저런 것들 걷어냈을 때 결국 남는 그림, 그의 드로잉, 이것이 작가 이수지에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생각이에요. 이 그림에 기본적으로 엄청난 힘이 있고 이게 원화를 봤을 때 드러나요. 제가 이 전시를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이작가의 작업실에서 원화를 꺼내서 마주했을 때였어요. 그때 드로잉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작가 드로잉의 선의 아름다움을 관객 모두 볼 수 있게 된 것 다행이에요.
이번 전시는 어린이라면 어린이, 드로잉을 좋아하는 분, 텍스트와 설명을 좋아하는 분, 설치 작품을 좋아하는 분, 영상을 좋아하는 분 등 다양한 관객이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계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여러 좋은 작품을 내고 크고 작은 상을 국내와 해외에서 받으며 최고로 우뚝 선, 중견 작가의 위치에 올라있어요. 지금 작가가 스스로를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달: 충분히 그런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방문하셔서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취중진담의 미니인터뷰 감사드려요!

/2024.5